나이가 깡패다 - 연봉 1억 따위

2. 연봉 1억 따위...

어렸을 때 개인적인 부자의 기준은 10억이었다. 부자라기 보다는 현실감이 없는 상징적인 숫자 정도. 요즘 동년배들은 한 15년 전 쯤에 티비 프로그램을 기억할 것이다. 10억이면 명동의 땅이 몇 평이고, 10억을 현금으로 쌓으면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보여주었다. 로또 당첨금은 그 당시에도 10억 ~ 20억원 수준이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로또의 초창기 광고 멘트는 ‘인생역전 로또’였다. 그때야 10억으로 인생역전이 가능했겠지만 지금은 10억으로 역전은 무슨 집사면 끝난다. 아닌가? 집 못사나? 집사면 역전 맞나? 요즘은 아파트가 10억이고 슈퍼카가 1억이다. 10억이라는 돈은 실제로 왔다갔다할 수 있는 금액이다.

21세기에 100억 정도는 되어야 ‘부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와 100억이면 연봉 1억으로 100년을 모아야하네요? 연봉 1억도 대단한건데...

2020년 기준 연봉 1억 소득자의 월 실수령액은 660만원이다. 만약 한 달에 20일만 출근하는 꿀직장이 있다면 일당이 33만원 정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든 내 계좌에 하루 33만원이 찍히면 연봉 1억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회사를 다니던 자영업을 하던 주식 매매를 하던 월세를 받던, 하루 33만원이 251일간(365 - 52x2) 통장에 꽂히면 연봉 1억이다. 반드시 하루 33만원이 아니라 월 660만, 연 8,000도 마찬가지다. 아니 연봉 1억인데 8,000만 원이 찍힌다고요? 그런데 일 33만원만 벌면 연봉 1억이라고요? 생각보다 작네요? 네. 바로 그겁니다.

직장인들이 유튜브를 하고 카페를 운영하는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실수령 300만원 기준 대충 월급으로 일당 15만 원 정도를 벌고 부수입으로 나머지 일당 20만원을 채우면 짜잔~ 나도 연봉 1억이다. 커피를 팔든, 배달이나 대리운전을 하든, 강의를 하든, 별풍선을 받든 하루 20만원을 더 챙기면 된다.

멋진 말로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낸다고 표현한다. 최근 증시가 요동칠 때 주변 친구들이 일 30만 원씩 버는 모습을 보면서 와 연봉 1억 형님 저도 종목 좀 zzz.

그런데 좀 이상하다. 하루 10시간 정도를 보내는 회사에서 15만원을 벌고 그 외 시간에 20만원을 더 번다고요?

게다가 연봉 1억은 루팡한테 뿌리는 급여가 절대 아니다. 9시 10분쯤 커피 홀짝이면서 들어오고 놀다가 점심도 2시간쯤 먹고 5시 반에 퇴근하는 사람에게 연 1억을 누가 주나. 월급에는 그만한 책임과 의무, 무게가 있다. 모르긴 몰라도 하루 12시간은 회사에서 보내고, 주말 중 하루는 반납해야하는 가혹한 자리일 것이다. 산술적으산 계산해봤을 때 월급의 가치는 정말 적다.

연봉 1억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소개팅 자리에서 저는 연봉 1억남이에요 호호호 하는 가오 잡는 용도? 농담이다. 은행에서 대출받을 때 이 사람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어디서 뜯어야 하나의 기준이 된다. 전세 대출은 전세집이 도망가지는 않으니까 쉽게 쉽게 빌릴 수 있는데 사업소득이나 투자소득은 빌려줬다가 말아먹으면 오또케? 월급 벌어서 갚겠지? 연봉이 1억이래? 2억 빌려주면 말아먹고 회사 3년 다니면서 채워 넣겠지? 승인해~ 정도의 레퍼런스가 될 것이다.

하려는 말은, 월급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 월급을 안 받아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요?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참을 고민하고 내린 결론이에요. 회사는 빨리 나와야 합니다. 서른 즈음에, 늦어도 마흔에는 내발로 나와서 월급에서 독립해야 합니다. 제가 어느 회사에서 얼마를 받고 입사한지 얼마나 되었고 무엇이 강점이고 업계에 뭐가 어쩌고 저쩌고. 네. 그래도 유효합니다. 월급에서 독립해야 합니다.

딱 한 줄 짜리 생각이다. 월급을 안 받아야 부자가 될 수 있나? 과거의 경험이나, 다른 부자들의 예시, 10년뒤 모습을 상상해보면서 긴 시간을 갖고 생각해보시는건 어떨까요.